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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의 전설을 만나다: 스테보 편
    Team BlueWhelk 인터뷰/전설을 말하다 2020. 7. 12. 21:01

    '독도남'이라고 하면 다수의 팬들은 수원을 거쳐 갔던 '런던 올림픽의 주역' 박종우 선수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수원에 있어 또 다른 '독도남'이 있었다. 물론 수원에서 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수원을 위해 '훅'을 날려 상대 선수 코뼈를 부러뜨리던(?) 남자, 누구보다 공손하게 "잘 부탁한다"고 90도로 인사했던 남자,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비속어도 서슴지 않았던 남자, 전 소속팀에서 적군에게 쏘았던 화살이 사랑의 화살이 되어 돌아왔던 그 남자, 북마케도니아 선수이지만 한국 현지화가 그 누구보다 잘 됐던 유럽 출신 특급 공격수, '애국 스트라이커' 스테보의 이야기이다.

    풀네임 '스테비차 리스티치', 콜네임 '스테보'는 전북-포항을 거쳐 수원에 입단해서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며 많은 팬들의 마음을 훔쳤다. 61경기 24득점이라는 기록은 '한 득점 한다'는 선수들에 비하면 조금은 저조하지만, 수원에 필요할 때마다 중요한 득점을 해 준 '일등공신'이 되었던 득점들이었고 그의 근본 넘치는 행동들은 수원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감동과 웃음을 남겨주었다. Team BlueWhelk(이하 'TBW')는 이런 스테보의 근황이 궁금해져 급하게 인터뷰를 요청하였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인터뷰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의 진정한 근본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와 함께한 푸른 근본, 지금 바로 풀어드리겠다.




    인터뷰에 응해주어 감사하다. 스테보를 모를 풋풋한 수원 팬분들께 간략하게 소개 부탁한다.

    - 반갑다. 나는 수원에서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스테보'로 뛰었던 '스테비차 리스티치'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 인스타그램을 보니 `리틀 스테보`가 훌륭한 선수로 자라고 있는 것 같다.

    - 은퇴 이후 가족과 함께 그간 못 보냈던 시간을 잘 보내고 있다. 직업이 아닌 재미로 축구도 하고 농구, 테니스를 비롯해 심지어 요즘은 낚시도 하면서 지낸다. 한 가정에 아빠이다 보니 육아에도 힘쓰고 있는데, 딸과 아들이 둘 다 스포츠에 푹 빠졌다. 딸은 핸드볼에 매진하고 있고, 아들은 날 따라서 축구 선수의 길을 걸으려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 경기를 보는 게 삶의 낙이 되었고, 이 아이들이 나중에 나보다 더 훌륭한 선수가 되었으면 한다. 여담으로 난 축구 코치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최근에 코치 과정을 수료했다. 언젠가 코치로서 제2의 축구의 삶을 보낼 수 있길 바라고 있다.


    인스타그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아이디가 정말 '한국적'이다. 당시 한국어는 어느 정도 가능했으며, 현재도 기억하고 있는 한국어가 있는가? (편집자: 스테보의 근본 넘치는 인스타그램 계정은 @koreastevo이다.)

    - 한국에 있을 때 기초적인 한국말들은 많이 사용했다. 심지어 아직도 배웠던 단어들을 기억하고 있어서 한국 친구들과 대화할 땐 한국어로 대화한다. (편집자: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어로 인터뷰할 걸 그랬다.)


    외국인 선수들의 한국어 '국룰'인 "몰라"도 많이 사용했을 것 같다.

    - 물론이다.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배우는 첫 단어가 바로 "몰라"이다.


    많은 사람이 스테보의 실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기억해주고 있다. 수원과의 고별전 당시, 교체 아웃된 후에 관중석에 올라와서 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보인 이유와 그때의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 수원에서의 마지막 경기는 왜인지 모르게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였다. 항상 수원 팬들은 어떤 순간이든, 모든 순간에 나를 지지해주고 응원해주었기에 나도 팬들과 특별한 소통을 하고 싶었다. 팬들은 우리가 계획대로 경기를 이끌어나가지 못할 때도 우리를 끝까지 응원하고 격려해주었다. 내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교체 아웃되면서 팬들이 내 이름을 연호해 주었을 때, 나는 순간 팬들에게 작별 인사와 감사 인사를 나누고 싶어졌고 그래서 본능적으로 관중석에 올라갔다. 수원 팬들은 항상 내 심장에 있고, 그렇기에 내가 수원에서 쏟아부은 시간을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면 아마 이 때가 아닐까.



    이런 멋진 모습도 있었지만, 반전 매력을 보이기도 하였다. 수원 소속 시절, 새끼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엄지를 혀에 찍는 비속어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 회자가 되고 있을 정도로 많은 팬들에게 또 다른 매력을 선보였었는데, 혹시 기억나는가?

    - 빅버드에서 부산을 상대로 했던 경기인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제스쳐'는 당시 수원의 코너킥이었는데 심판이 내 발을 맞고 나갔다며 부산에 골킥을 선언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했던 제스쳐였다. 물론 한국 선수들에게 배웠다(웃음).

    스테보의 이 제스쳐는 한국인 패치가 완료된 K리그 외국인 선수의 사례로 길이 남을 것이다.




    이 행동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가? 알고 있었다면 누가 알려주었나?

    - 나는 '그 제스쳐'를 맹세하는 의미로 알고 있었고, 심판이 내 말을 믿어주길 바랐기 때문에 사용했다. 덕분에 많은 선수들이 '그 제스쳐'로 나를 많이 놀렸다(웃음).


    당신의 근본 넘치는 행동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수원의 역사에 남는 사건인 `알 사드 전`이 있었다. 그 사건에 스테보가 중심에 있었는데, 그때의 매운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당시의 일화 좀 들려달라.

    - 아직도 여전히 기억한다. 나는 수원의 선수임과 동시에 페어플레이를 중시하는 사람이다. 그 사건의 모든 전말은 상대 팀의 더티 플레이와 비매너 행위로부터 나왔다. 알 사드의 골키퍼가 우리 서포터를 밀친 것(편집자: 당시 이런 더티 플레이와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던 수원 서포터가 끝내 분노를 참지 못하고 난입을 했다.)을 시작으로 우리가 싸웠던 거로 기억한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어서 차마 그곳에 멀뚱멀뚱 서 있거나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고 그 순간만큼은 오직 수원 팬들과 수원을 위해서만 움직이고 싶었다. 난 항상 내가 사랑하고 존중하는 것들을 위해서만 싸운다. 이후에 5경기 출전 정지라는 징계 처분을 받았지만, 그 당시 일에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난 그때처럼 똑같이 수원을 위해 싸웠을 것이다.

    스테보는 불의를 절대 참지 않았다. (출처=OSEN)



    알 사드 전은 스테보 덕분에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 이 외에도 수원에서의 기억에 남는 경기가 더 있는가?

    - 수도 없이 많은 경기를 치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아무래도 내가 뛰었던 모든 슈퍼매치인 것 같다. 당시 우리는 슈퍼매치에서 한 차례도 진 적이 없었지만(편집자: 현재는…. 생략하겠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슈퍼매치는 내가 처음으로 서울을 상대했던 슈퍼매치이다. 당시 우리는 내 골 덕분에 1-0으로 승리했었다.


    그렇다면 수원에서 `이 선수와는 호흡이 잘 맞더라`하는 선수는 누구였는가.

    - 수원 시절 내 베프였던 에디 보스나. 한국인 선수 중에는 항상 친근하게 다가와 주었던 정성룡(가와사키), 박현범(촌부리), 염기훈, 이용래(치앙라이), 박종진(김해시청), 오장은(은퇴), 정대세(시미즈) 등이 있었다...❤


    이 외에 잊지 못하거나 아직도 연락하는 선수가 있는가?

    - 바이버,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으로 여전히 많은 선수와 연락을 하며 지낸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지지해주면서 '근황 토크'를 나누기도 한다. 한국에서 정말 많은 선수와 연을 쌓았기 때문에 그립고 보고 싶은 선수들도 많다. 김재성(인천 코치), 최효진(전남), 현영민(JTBC 해설위원), 황진성(은퇴), 김형일(고알레), 권순태(가시마) 등등…. 이 외에도 이종호(전남), 신화용(전 수원)은 가장 보고 싶다. ❤️ (편집자: 언급된 선수의 대부분은 스테보가 거쳐 갔던 전북, 전남, 포항 출신의 선수들이다.)

    정대세와는 하트 이모티콘을 날릴 만큼 사이가 애틋(?)하다.


    그렇다면 수원 소속으로서의 생활은 만족했는가? 0%부터 100% 중 선택해달라.

    - 수원에서의 2년 간 여정은 너무 행복했다. 축구 인생을 시작하면서 가족의 삶, 친구들, 팬들까지…. 이에 대한 만족도는 99%였다. 1%가 모자란 이유는 내가 수원에 오래 머물지 못한 한(恨)이다. 그러니 이해해달라.


    좋다. 이번엔 조금 더 많은 솔직함을 필요로 하는 질문이다. 수원을 포함해서 K리그에서 활약했던 구단 중 가장 애정이 남아있는 구단은 어디였는가. 솔직하게 말해달라.

    - 한국에서의 모든 팀이 나에겐 특별한 곳이었다. 전북은 한국에서의 내 첫 구단이었고, 포항은 내 커리어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들어 올린 구단이었으며, 전남은 내 한국 축구 커리어의 마지막 구단이었다. 하지만 수원에서의 있었던 감정은 조금 다르다. 2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너무 행복했기에 나는 수원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수원에서 좋은 모습을 자주 보여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팬분들이 정말 최고였다. 서포터 덕분에 항상 빅버드에서 경기하고 싶었고, 그들은 절대 쓰러지지 않았다. 아, 가족들도 수원에서의 삶을 가장 만족해했었다. 또한, 많은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타국에서 오게 되면 종종 외로울 때가 많은데, 수원에서는 그런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우린 항상 주변에 친구들과 우릴 배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린 너무 행복했다. 내 커리어에서 딱 한 구단을 정하라면 고민할 여지도 없이 수원을 꼽겠다. 피치 위에서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가장 행복했던 곳이 바로 수원이었기 때문이다.


    그 전체의 경력 중에서 아군이나 적군으로 만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선수는 누구였는가.

    - 한국에서 많은 훌륭한 선수들을 만났지만 내게 가장 좋은 인상을 남겨준 선수는 염기훈과 데얀(대구)이었다.

    염기훈은 스테보에게 든든한 동료였다.



    조금 진지한 질문으로 가보겠다. 스테보는 윤성효 감독과 함께 했다. 윤 감독이 스테보를 스트라이커가 아닌 윙어로 기용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윙어로 뛰어보니 어땠나? 역할도 많이 달랐을 텐데.

    - 윤성효 감독은 여전히 나에게 있어 감사한 분이다.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나를 수원으로 데려왔기 때문이고, 두 번째 이유는 윤 감독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적어도 내겐 최고의 감독이었다. 우린 어떤 상황에서도 프로다워야 한다. 만약 감독이 내가 좌·우측 윙어로서의 플레이가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나는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난 항상 수원 승리에 이바지할 수만 있다면 어느 위치에서든지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프로이기 때문에 감독의 결정을 존중하고 이행해야 한다.


    스테보는 수원에서 활약한 이후에도 전남에서 마지막 K리그를 도전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전남으로의 이적은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하는가?

    - 난 전남으로의 이적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한국의 3개 빅클럽(전북, 포항, 수원)을 경험한 이후 전남에서 뛰어보는 것도 좋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남에서도 좋은 경기를 했다.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고, 좋은 동료들이 함께했으며, 훌륭한 하석주 감독이 지휘했기 때문에 전남으로의 이적은 좋은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현재 수원 근황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알고 있다면, 알다시피 많이 힘든 상황이다. 현재 팀 상황을 문제점과 함께 '통쾌하게' 지적해주었으면 좋겠다.

    - 매주 주말마다 여전히 K리그와 수원 경기를 보고 있다. (편집자: 이 인터뷰도 슈퍼매치(07. 04. 경기)를 봐야 한다며 시청 이후에 무승부에 슬퍼하며 보내 준 인터뷰 답변이다.) 수원엔 좋은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수원은 공격할 때 좀 더 공격적으로 플레이하고 공격 진영에서 더 많은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게 내 견해다. 지난주에 본 슈퍼매치(3-3)에서 수원이 공격할 때마다 더 우세했고 더 많은 득점 찬스를 가져갔음에도 수비에 집중하고 수비에만 나서면서 문제가 생겼다. 공격이 없는 축구는 재미가 없다. 최소한 내 생각은 그렇다.


    수원에 현재 보스니아 출신의 크르피치라는 선수가 있다. 이 선수에게서 스테보의 모습이 많이 보인다고 한다. 갑작스럽지만, 크르피치에게 조언 한마디만 부탁한다.

    - 크르피치가 뛰는 모습을 봐서 잘 알고 있다. 팬분들이 왜 나와 크르피치를 비교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크르피치는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를 배우고 팀 동료들의 생각을 배울 시간이 조금 필요해 보인다. 즉, 크르피치의 움직임에 동료들이 어디로, 어떻게 패스를 줘야 그가 가장 위협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는지 직접 터득해야 한다.


    많은 팬들이 '푸른' 스테보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방한도 자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새 직장'으로서 방한할 수 있다면 할 의사가 있는 지 궁금하다.

    - 한국은 나에게 '제2의 고향'과 같다. 많은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오라면 당연히 두 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올 것이다. 사실 난 한국에서 코치로서 다시 불러주길 바라는 마음이 굴뚝같다. 특히 수원이라면 여러분들을 다시 볼 수 있으므로 더더욱 '대찬성'이다.


    꼭 다시 만날 날을 기원하겠다. 아, 그러고 보니 스테보에게는 '푸른 피'가 흐른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 우리는 모두 '푸른 피'를 갖고 있기에 반드시 차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난 항상 나 스스로가 수원 팬이라 여기고 살고 있다.

    스테보에겐 여전히 푸른 피가 흐른다. (출처=블루포토)



    근본 넘치는 인터뷰 감사하다. 마지막으로 코로나 19로 인해 집에서 이 인터뷰를 보게 될 팬분들께 짧은 인사 부탁한다.

    - 마음 같아서는 한국에 있는 모든 우리 팬분들께 직접 인사드리고 싶다. 코로나 19로 많이 힘들 텐데 모두가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이 행복하고 기억에 남는 경험을 갖고 언젠가 반드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영원한 수원 팬, 스테보의 근본에 감동의 쓰나미가 몰아친 인터뷰였다. 번역하는 내내 '푸른 근본'이 역자의 마음을 꿰찼을 정도로 이번 인터뷰 자체가 매우 남다르고 특별했다. 비록, 현재는 그를 빅버드에서 만날 수 없지만, 그의 기원대로, 언젠가는 또 다른 직업으로 그를 빅버드에서 다시 만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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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Team BlueWhelk = BluaDefio, 작성: Team BlueWhelk = DduDdaZeon, 수정: Team BlueWhelk = BlueWhe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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